의사선생님은 평상시보다 더 격하게 움직여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심장이 아플시 버튼을 꾹꾹 누르라고 알려주셨다 평상시보다 스쿼트 등의 운동을 하였다 전혀 아픔이 없다. 문제는 걷기 시작하면 아프다는것이다. 이러니 내가 협심증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할수 밖엔 없던것이다. 한번 협심증으로 스텐트를 넣었던 경험자로서 그때의 증상과는 전혀다른 증상이니 협심증을 의심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다음날 평상시와 같이 아침에 출근을 하고 친한 동료와 스타벅스에서 수다를 떨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빨리 내원하셔야 할 것 같네요.”
“왜요?”
“피검사에서 심근경색관련한 증상이 잡혔네요.”
“무슨 말이시죠?”
“일단 빠르게 내원하시죠.”
그길로 나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 검사결과에 대해 들었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어제 한 피검사에서 심장의 심첨부라는 가장 아래쪽 뽀족한 부분이 조금 괴사한 것 같네요.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셔서 검사 받고 시술을 받는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고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다. 분명 급성심근경색이라는 소견서를 받았기에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남들보다 빠르게 의사를 만날수있었다. 신기한건 많은 분들이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어떤분은 21시간이나 대기하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의사를 만나지 못한분도 있었다. 응급실이라는게 하루에 받아야 하는 환자수, 병상수가 있다보니 모든 사람을 받기보다 위중한 순서로 받는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의사를 만나고 심장관련한 몇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더니, 막힌것 같아요. 하지만 일단 무한 대기를 하셔야 해요, 아마도 금일 자정이 되어야 의사를 만나서 검사검 진행될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받았다.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응급실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응급실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채워진 사람들을 보면 모두다 하나 같이 웃는 얼굴은 없다. 물론 응급실에서 웃는얼굴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웃기긴 하지만, 그렇게 모두들 슬픈얼굴이었다. 더 놀라운건 매일 이렇게 응급실은 환자로 넘쳐난다는 것이다. 아픈건 슬픈일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더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혼자서 생각을 했다. 과연 이렇게 대기하는게 내 심장에 맞는 일일까? 그래서 나는 2016년도에 시술했던 한림대에 문의했다 하지만 한림대 또한 일단 전화상으로는 응급실 현재 상황을 확인하는건 불가능하니 환자분이 직접 오셔서 확인을 하시는게 맞을겁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이라서 더 좋을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 심장을 조금더 빨리 care해주고 싶었고 말그대로 1차 병원의 소견은 급성심근경색이니 나는 촌각을 다투고 싶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한림대로 향했다. 그렇게 방문한 한림대에서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검사를 몇가지 하더니 일사천리로 시술을 하게 되었다.

2016년에는 시술을 사타구니로 했다 그쪽이 큰 동맥인지 정맥인지가 흐르기에 시술이 안전하다고 해서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팔에 시술을 하게 되었다. 팔에 시술을 하니 우선 소변보는게 편했고, 여러가지 활동에 제약이 없어서 무척 좋았다.
응급실에서도, 환자병동에서도 나처럼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사람들이 무척 많이 오는걸 보았다. 모두들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의사의 지시대로 병상에 누워있지만 모두다 하나같이 심장쪽의 문제로 오는 사람들이었다.
시술을 마치고 배정된 환자병동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이었다. 질병 감염문제로 보호자와의 면회가 되지 않는 병동이었다. 하지만 간호사 분들이 간병해주시니 전혀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혈관, 심장, 혈압 등등의 체크를 하면서 하루가 지나갔고, 마침 내 자리는 창가쪽이라서 창밖을 보면서 하루종일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날따라 감성에 젖어 모처럼 본 하늘이 이렇게 맑고 깨끗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독일 호텔 창문으로 봤던 그날의 맑은 하늘도 기억이 나서 그때 찍어 두었던 사진도 올려본다.